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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05 한 해가 또 지나 가는데....
마지막은 끝이 아니라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거라 믿는다. 좋은 일, 나쁜 일들 다 지나보면 이 모든 것들이 다 새로운 일을 위한 기꺼운 준비였음을, 세월을 한참 지나고 보니 알 게 되더라. 언제나 이렇게 비가 오고 겨울이라는 추위와 한 해가 저물어가는 때가 오면, 아주 예전에 힘들었든 나의 시간들이 떠오르고 새삼 감사함에 무릎 꿇는다. 어려움에 새로 직장을 가져야 했고, 살고 있던 집을 나와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었야 했던 그때 한순간, 난 마지막이라는 생각도 했다. 세상 밖의 치열함을 하나도 몰랐든 미숙한 어리광이었겠지만, 그때가 끝이라고 생각했었다면 지금의 이 자리가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대가로 얻은 깨달음에, 지금 그냥 묵묵히 내 몫의 자리를 지키면서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있다. 살아야 한다는 것을 위해 살다 어느새 또 한해가 끝나가고, 서둘러 책상 앞에 앉는다. 무엇이 귀하고 깊고 멋지며 소중한 것에 대한 마음은 지극히 다르겠지만, 그냥 어제가 오늘 같고 또 오늘이 내일 같은 마냥 평범한 삶이 더 힘들고 귀하다. 내 곁에 있는 모든 이들이 언제나처럼 함께 지켜주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오래도록 할 수 있는 튼튼함이 있어 주고, 보고 싶어 뭐라도 핑계 들고서 만나야 하는 이가 있음이 얼마나 감사하고 또 감사한지. 올해의 마지막도 언제나처럼 지나가고, 다시 돌아오는 새해에도 똑같이 모든 내 주위의 것들이 여전히 있으리라 믿으면서 새롭게 또 힘주어 시작하련다.
2015-12-03 감사합니다.
'100년을 살 것처럼 열심히 일하고 내일 죽을 것처럼 간절히 기도하라' 고 외친 벤자민 프랭크린의 말을 떠올리면서 올 한 해 나의 행적을 점검해 보기로 했습니다. 2015년 새해 첫날 결단한 것이 있다면 그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무엇에든지 감사만 하겠노라 마음 먹었습니다. 매년 새해를 맞을 때마다 만 가지 복을 빌어본들 실상 내 뜻대로 되는 일이란 별로 없었음을 경험하고 있는 나로서는 더 이상 '복' 따위에 속지 않으리라는 심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특한 결단에 조롱이라도 하듯 새해 초장부터 원통하고 절통한 일이 시작되더니 일년 내내 눈물 빼는 일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잘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는가 하면 친한 친구와의 오해로 뼈아픈 결별을 해야만 했고 가족 중에 암 수술을 지켜봐야 하는 아픔도 겪었습니다. 자동차의 잦은 고장으로 주행 중 애간장이 녹기도 하고 한밤중에 도둑에게 자동차를 털린 일은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습니다. 또 잔병치레 없이 건강을 자부하고 있던 나에게 의사는 나이에 따른 질병이 생겼다며 경고까지 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죽기 살기로 열심히 뛰고 달렸지만 벌이들인 것에 비해 지출은 배가 되어서 통장은 늘 배고픈 채로 있었습니다. 햇빛 따사로운 가을 날 호젓이 배낭 짊어지고 낙엽 여행을 떠나려던 계획은 실행도 못해보았고 그나마 고달픈 인생에 기쁨이었던 시나리오 글쓰기 원고는 마침표를 찍지 못한 채 해를 넘기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도 가장 마음에 앙금으로 남아 있는 것은 사람과의 연결고리에 있어 불청객이 끼어 껄끄러워진 일입니다. 워낙 긍정적인 마음을 선물로 받고 태어나 엔돌핀은 물론 다이돌핀까지 넘치던 나의 감정은 어느덧 가뭄에 쩍 갈라져 버린 논바닥 같아 보였습니다. 이리저리 생각해봐도 올 한해 진심으로 감사 드리고 싶은 일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허전하고 쓸쓸한 마음을 달랠 길 없던 중에 문득 깜빡 잊고 있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하마터면 실의에 빠져 그녀와의 약속을 놓칠 뻔 했습니다. 그녀를 떠올리자 늘 함박꽃 웃음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그녀의 얼굴이 못 견디게 그리워졌습니다. 나는 한 걸음에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그녀의 이름은 '제이'이며 중증 1급 뇌성마비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평생을 침대에 누워 지낸 세월이 자그마치 58년입니다. 그녀의 신체 중에서 제대로 활동할 수 있는 기능은 눈과 귀, 입 뿐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신기할 만큼 그녀의 기억력은 대단합니다. 몇 년 전 크리스마스 전날에 케어 홈을 방문했다가 우연히 한국사람인 제이를 만나게 되었을 때 나는 무척 당혹스러웠습니다. 손가락과 발가락은 물론 혀까지도 심히 꼬여 있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는데다 용변마저 옆구리를 뚫어 받아내고 있었습니다. 무슨 말인가를 표현하려 애쓸 때에는 눈과 손에 심한 경련이 일어나므로 무섭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겉모양과는 달리 제이의 마음은 얼마나 착하고 선한지 늘 입꼬리가 귀 끝까지 올라가 있었습니다. 유난히 노래를 좋아하는 제이는 만날 때마다 무언가의 곡을 흥얼거리고 있어 음율과 거리가 먼 나까지도 절로 신명 나게 만들어줍니다. 우리는 어느덧 절친한 친구가 되어 서로의 속마음까지 털어 놓습니다. 다른 이들은 절대 알아들을 수 없는 비밀을 저는 다 알아 들을 수 있어 즐겁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내가 제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밥을 먹여주는 일과 책을 읽어 주는 일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밥을 먹이는 일은 절대로 노하우가 필요합니다. 먹는 음식 중 반 정도가 밖으로 흘러 내려오기에 입을 벌리는 동시에 음식을 입안으로 밀어 넣는 타이밍은 무척 중요합니다. 내가 한술 한술 조심스레 떠 넣어주는 음식을 제이가 맛있게 꿀꺽 삼켜 줄 때마다 나는 얼마나 뿌듯한지 세상을 다 얻은 기분입니다. 그녀의 소원은 아름다운 이 세상에서 더 오래 살고 싶다고 말합니다. 불편하게 태어났지만 받은 것이 너무 많다며 미안해 하는 제이는 훗날 그 나라에 가면 넘치게 받은 사랑들을 백배로 갚을 것이라고 내게 속삭입니다. 이제 그녀에게 읽어준 책은 올해 들어 12권 째가 됩니다. 얼마 후 마지막 책장을 덮는 날 우린 큰 파티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 날에 제이가 너무 기뻐서 온몸을 흔드는 모습을 생각만해도 나는 흥이 납니다. 나는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제이, 너무도 많이 부족하게 가지고 있는 그녀가 평생 감사하며 살아온 시간 모두는 하늘로 건져 올려진 값진 보물이었으나 정작 모든 것을 다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툴툴거리며 불평했던 나의 시간들은 여지없이 땅에 떨어져 낭비되었다는 것을. 나는 뒤늦게 서둘러 기도를 올립니다. 나의 소원과 다른 부족과 결핍, 불편과 절박함 고통과 눈물이라는 기적의 재료를 선물로 주셨음을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2015-11-05 가을의 노래
누군가가 들려준 김대규 시인의 '가을의 노래'라는 시의 몇 구절이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지면 가을이다. 떠나지는 않아도 황혼마다 돌아오면 가을이다. 사람이 보고 싶어지면 가을이다. 편지를 부치러 나갔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주머니에 그대로 있으면 가을이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 때문에 집을 떠난 뒤 긴 시간을 돌아 지금 여기까지 와있다. 문듯 운전을 하다 해가 너웃너웃 지며 빨갛게 물들어져 가는 하늘을 바라보면, 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만 할 것 같아 서둔다. 집 떠나 살든 어린 마음속에 혼자서 외로워하든 그때가 떠올라, 솟구치는 이상한 두려움으로 얼른 나의 집으로 돌아온다. 세월의 씻김에 많이도 무뎌지고 희미해진 감정들이지만, 아직도 가을이라는 글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외롭고 또 보고 싶다. 굳이 가을이라는 변명으로. 못다 한 외로움, 그리움을 - 올해도 똑같은 쓸쓸함으로 덮고 나면 언제나처럼 되돌아올 것이지만, 난 지금 그냥 떠나서 다시 내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 보련다. 이제는 아주 나이 많은 엄마 앞에서 다시 어린 딸로 다가가 기대어도 보고 싶고, 부끄럽지만 함께 손잡고, 함께 웃으며, 함께 맛있는 거 먹으면서 지내고 오고 싶다. 나 또한 저렇게 엄마처럼 나이 먹으면서 살게 될 거라는 멋진 자화상 보면서, 정말 기쁘고 행복한 가을의 노래를 실컷 불러 볼 것이다.
2015-11-01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의 비밀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시카고 공항에 내렸습니다. 낮설은 공항엔 북적거리는 인파로 정신이 없지만 웬지 친근감이 느껴집니다. 유나이트 항공사측의 좌석배치 컴퓨터 오류로 정해진 시간에 탑승하지 못한 승객들 사이에 끼어 있는 나는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흥미로움에 전혀 지루한 줄을 모릅니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대체 무슨 일을 하며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은 오랜 기다림에 죄송하다며 속히 탑승해 줄 것을 알리는 승무원의 안내방송마저 섭섭하게 들려집니다. 내 좌석은 비행기 날개 쪽 창가입니다. 잠시 후 비행기가 활주로 끝에서 공중으로 떠오르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몸부림을 치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에 200여명을 태운 무거운 물체가 가뿐히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구름보다 더 높이 올려진 나는 점점이 작아지고 있는 산과 바다, 고층 빌딩과 집들, 그리고 줄지어 달리는 자동차들의 물결을 내려다봅니다. 하늘에서 본 아래 세상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합니다. 수많은 문제 앞에서 선택과 후회를 반복하면서 치열한 싸움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 좀전의 시끌벅적 했던 사람들의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사람 살아가는 일이 어쩌면 한 순간 꿈 일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눈을 감으니 평안해집니다. 문득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의 산수화가 잔잔히 마음에 펼쳐집니다. 나는 지금 딸아이와 함께 멀리 동부에 살고 있는 소녀에게 왕진을 다녀 오는 길입니다. 지난 주말, 방문해 달라는 메모와 함께 두 장의 비행기표를 보내온 사람은 친척과 다름 없는 이웃 사촌입니다. 모든 일을 접어두고 급하게 달려간 그곳엔 가족간에 미움과 원망과 오해로 뒤엉켜있었습니다. 다빈이 부모는 25년 전에 한국의 고아원에서 예쁜 갓난아이를 입양했습니다. 고맙게도 착한 모범생으로 잘 자라주던 다빈이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곁길로 나가더니 마약에 손을 댄뒤 막장인생이 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아이가 출생에 대한 비밀을 알기 시작한 뒤 자신은 저주받은 인생이라고 생각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부모는 부모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각기 다른 각도에서 자신들의 억울함에 반응하고 있는 모습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서로가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는 것만이 부모와 자식간에 사랑이 회복할 수 있는 길임을 강조했으나 그들의 귀에는 아무런 말도 들려지지 않는 듯 했습니다. 나는 어느 한 날 갑자기 땅 아래로 곤두박질 쳤던 우리 딸아이의 삶을 털어놓으며 인생은 해석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한 장의 CD 얘기를 전했습니다. 그러니까 좋은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딸 아이가 곧 이어 의과대학원 입학을 며칠 남겨 놓지 않을 즈음입니다. 몸살기가 있다던 아이가 감기에 걸렸습니다. 나는 습관대로 집에 남겨져 있는 감기약을 먼저 복용케 하였습니다. 그러나 차도가 없자 강도가 좀 더 센 약을 찾아 먹였는데 이후 딸아이는 웬일인지 아예 자리에 누워 일어나지를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급기야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는 이미 감기바이러스가 폐로 옮겨갔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호흡곤란으로 인한 심장의 악화로 체력이 바닥나 있는 상태에서 아이는 여러 날이 흘러도 기력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면역력이 없는 가운데 또 다른 질병이 아이의 신체 중 장기에 붙어있음을 발견했습니다. 한차례 응급수술을 받았으나 완쾌되지 않아 주사와 독한 약을 병행하여 치료를 했지만 아이는 처절할 정도로 지쳐가기만 했습니다. 이 모든 일이 제 탓인 것을 한탄하며 극심한 번민과 괴로움 속에서 딸 대신 내가 아플 수 있기를 바랬습니다. 엄마가 돼서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마켓의 문이 닳도록 드나드는 일이었습니다. 어떻게든 아이의 입맛을 되살려내서 전처럼 건강하게 뛰고 달릴 수 있기를 소망하는 마음 절박해서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늘상 그렇듯이 한국마켓 입구에는 각종 지역신문과 여려 교회의 CD가 널려 있기에 곁눈질로 흘려 보고 지나치려는데 유독 '관점' 이라는 제목을 가진 CD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집에 돌아온 나는 별 기대 없이 그 CD를 틀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얘기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쭉쭉 빵빵 잘 나가고 있던 딸아이의 인생이 하루아침에 엉망진창이 돼버린 지금, 결코 이해와 용납이 되지 않는 절망적인 우리의 처지를 심원법으로 끌어올려 해석하라는 말이 들려왔습니다. 안평대군의 꿈을 그려낸 '몽유도원도'는 보는 각도에 따라 고원법과 평원법, 심원법으로 그려졌음을 설명하며 관점의 해석에 따라 반응이 다르므로 행복한 인생은 올바른 해석에 달려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현실 앞에 놓인 걱정과 근심, 절망과 실패의 암울함은 평원법과 고원법으로만 보여질 뿐 내 삶의 그림을 심원 법으로 끌어 올리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좋은 생각에만 몰입했더니 그동안 잃어버린 감사한 일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웃음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감사할수 없을 때 감사하는 것이 가장 큰 감사라는 것을 그 때 알았습니다. 어느 덧 4년여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남들보다 몇 발자국 늦었지만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딸아이의 모습은 씩씩합니다. 늦은 만큼 더 단단해졌으니 어떠한 어려움에도 웃음을 잃지 않으리라 믿어집니다. 그리고 죽을 만큼 아파 봤으니 몸은 물론 상처 난 마음까지도 잘 치료하는 훌륭한 힐링 의료인이 될 것이라고 믿어집니다. 제 경험으로 보아 인생길에는 이따금씩 브레이크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만큼 살아오는 동안 시원하게 잘 뻗은 인생의 고속도로만 질주했다면 아마 나는 '몽유도원도' 속에 숨어 있는 복숭아꽃 만발한 무릉도원은 영영 발견하지 못했을 겁니다. 10분 후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한다는 기내방송이 흘러나왔습니다. 비행시간동안 꺼 두었던 셀폰을 꺼내 열었습니다. 한 개의 메시지가 찍혀 있었습니다. '우리 딸 다빈이가 짐을 싸 들고 완전히 집에 돌아왔습니다. 눈물 뚝, 행복시작입니다.'
2015-10-03 냉장고를 부탁해
정말 큰 일입니다. 마음 약한 제가 또 일을 저질렀습니다. 일년에 한번 맞이하는 귀한 노동절 날에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집안 정리를 하겠노라며 아직도 깨끗한 거실의 커튼을 뜯어 내리고 가구의 배치를 옮기기 위해 난리법석을 떨고 있을 때 남가주로 이사 간 절친한 친구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친구야, 난데, 뭐하고 있어? 한국서 친정 엄마랑 조카가 놀러 와서 샌프란시스코를 구경 시켜 드렸는데 지금 돌아가는 길에 자기 집에 들릴까 해서… 괜찮을까?", "지금? 집안이 엉망이라서….", "괜찮아, 우리 사이에 뭘 그런걸 신경 써. 지금 안 보면 언제 또 얼굴 보겠어. 보고 싶당", "그래, 그럼 놀러 와" 마음이 다소 불편했지만 때마침 집안 정리하는 일에 싫증을 느끼고 있던터라 손님의 방문을 허락 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좀 전의 내 판단이 그토록 크게 후회가 될 줄은 시계를 보고 나서야 더 절감했습니다. 때는 곧 저녁 식사시간이었고 손님이 곧 들이닥칠 시간은 불과 1시간 남짓 남았을 뿐이었습니다. 나는 급한 김에 거실 바닥에 가득 쌓여 있는 물건들을 구석에 있는 옷장 속에 마구잡이로 쑤셔 놓고 닫히지 않는 문을 어깨의 힘으로 겨우 밀어 부친 후에야 부엌으로 달려갔습니다. 냉장고 문을 열었습니다. 아! 그런데 어쩌면 좋을까요? 쉬어빠진 김치와 남겨놓은 잡채와 시들해진 몇 가지 야채, 그리고 콩조림과 짱아치를 비롯한 약간의 밑반찬 뿐이었습니다. 긴 한숨이 나왔습니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갖고 냉동실 문을 열었습니다. 꽝꽝 얼어있는 홍합과 새우, 연시감과 찹쌀떡, 아이스크림 등에서 하얀 김의 찬 기운이 내 얼굴로 품어져 나왔습니다. 역시나로 확인된 냉동실에 실망한 무너진 마음을 추스리면서 얼마 전까지 먹거리를 냉장고에 잔뜩 보관해 놓고는 곧잘 잊어버리던 나쁜 습관을 바꾼 것마저 후회가 되었습니다. 재료를 꺼내 놓고 고민하는 시간이 10분이나 흘렀습니다. 마음이 무척 바빠졌습니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손님의 연령대였습니다. 손님으로 올 조카의 나이를 고려한다면 이십 대 후반을 시작으로 친구 어머니는 대충 육십 대 후반으로 추측합니다. 한국에서 오셨다니 식상한 한식스타일을 벗어나야 하겠지만 여행 중 다소 느끼했을 미국식단도 고려해야 하고 또 집을 떠난 뒤 그리웠을 고향집 밥맛으로 구수하고 깔끔한 맛을 느끼게 할 한식과 양식의 접목식단으로 입맛을 확 사로 잡아야 하는 일이 큰 숙제입니다. 잠시 후 식탁에 올려질 음식들이 선명하게 그려졌습니다. 슬그머니 입가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나는 몇 십 년의 재빠른 주부경력 손놀림으로 양파와 매운 고추, 버섯을 다져서 생선알과 마요네즈를 섞어 매콤하고도 담백한 홍합구이를 만들었습니다. 잡채는 남아있던 야채와 깻잎 등 오징어를 함께 다져서 오묘한 맛의 잡채전을 준비했고, 신 김치는 물에 빨아 송송 썰어서 올리브유에 볶은 뒤 고소하고도 칼칼한 식감 좋은 김치파스타를 만들었습니다. 또 새우는 등을 갈라 버터와 후추로 구운 뒤 손 마디만한 크기로 썬 납작한 오이와 섞어 유자청과 레몬을 짜서 약간의 마늘과 함께 새콤달콤한 소스를 만들어 입안을 개운하게 하고도 남을 새우오이 냉채를 준비했습니다. 또 노인의 치아를 위해서는 고기를 아주 얇게 채 썰어서 노란 부추와 팽이버섯을 넣어 구수한 맛을 더했습니다. 디저트로는 얼어있던 연시 감을 샤베트 대용으로 생각했으며 바나나를 구워 그 뜨거운 바나나 한 켠에 아이스크림을 얹어서 따뜻함과 차가움에 부드러운 맛을 함께 음미케 하여 입안의 향긋한 풍미가 오래 남도록 준비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한 시간 30분 동안에 코스요리로 만들어낸 요리는 여덟까지, 무엇보다도 요리에 맞는 그릇 선택은 매우 중요함을 알고 있는 나는 최대한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게다가 한 쪽 구석에 묵혀두었던 단호박을 꺼내 위의 꼭지를 오려내어 씨를 파낸 후 그 안에 물을 넣고 뒷 뜰에 피어 있는 들꽃을 꽃아 식탁 가운데 장식했더니 정말 대단히 멋졌습니다. 게다가 삼단으로 된 호박 초로 불을 밝히니 그 우아한 분위기란 와우! 내가 생각해도 어찌 그리 기발했는지 기특하기만 했습니다. 어느덧 다섯 분의 손님들이 극히 만족하고 행복한 식사를 마친 뒤 떠날 채비를 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거실 한쪽 구석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습니다. 손님 맞이에 어쩔 수 없어서 억지로 구겨 처넣었던 물건들이 옷장 문이 열리면서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고 말았지 뭡니까. 그 어처구니 없는 광경에 친구가 한 마디 합니다. "아이고 넌 여전 하구나. 아무튼 넌 이래서 영원히 귀여워" 그들이 떠난 뒤 남기고 간 사람사는 냄새가 금새 다시 그리워 질 것 같아 나는 얼마동안 식탁을 치우지 않았습니다. 호박꽃 촛농이 흘러 넘칠 때까지.
2015-10-01 조각보 단상
문득 올려다 본 침대 위에 걸려있는 여러 색깔의 조각보를 보았다. 어쩌면 산다는 것도 이 작은 조각조각들이 모아져서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러 조각의 자투리 천들을 모아 하나하나의 다른 색과 질감이 따로 같이 이어져서 만들어내는 기가 막힌 예술 작품인 것이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아무런 기술도 부리지 않으며 무엇을 하겠다는 어떤 모양의 작정도 없는 무기교의 기교, 무계획의 계획이라고 표현할 만큼 인위적이지 않고 그냥 편안하게 평범하다. 산다는 것 아니 서로가 너무도 다른 이들과 함께 삶의 길을 간다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모두가 따로 떨어져 있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듯이, 결국은 혼자서는 아무 것도 안된다는 그런 이야기다. 싫어하고 좋아하는 사람의 구별이 너무도 뚜렷한 나는, 좋으면 하늘에 떠 있는 별이라도 따서 다 주고픈 마음이고, 싫어하는 사람은 눈길 하나도 주고 싶어 하지 않는 못된 성격이다. 그로 인해 가끔 여러 형태의 불편함도 겪지만, 수없는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는 사랑, 질시와 비난과 아픔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과는 기준이 다른 아름다운 사랑, 찬사의 향연 속에 또 지금 같은 행복도 있다. 그런 모든 하나하나의 조각들로서 엮어져 결국은 작품 . 인생으로 이름 지어지는 것이다. 오늘도 누군가를 만날 것이고 또 하나를 이어갈 것이다. 식구들을 위해 부엌에서 쌀을 씻고 저녁 반찬을 준비하며, 감당 못할 욕심도 없고 특별한 기교도 없이 인생이라는 조각을 꿰매어 갈 것이지만, 어쩌면 멀찌감치에서 하나의 예술로서 바라본다면 누군가는 잘 만들어진 조각보 인생이었다고 해주었으면 싶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2015-09-02 머리에 꽃을 단 여자
편집국에서 또 연락이 왔습니다. 이제라도 그만 고집을 접고 사진을 제출해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편집상 얼굴사진이 없는 글은 폼이 나지 않아 매번 월간지의 뒷면 쪽에 글을 실을 수 밖에 없다는 귀여운 엄포까지 놓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죄송한 마음을 전하며 그 제안에 동의 하지 않았습니다. 월간지에 오르는 다른 작가나 칼럼니스트들의 깔끔하고 품위 있는 사진을 들여다 볼 때마다 부럽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만 나는 그저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감사할 뿐입니다. 유독 사진발 잘 받는 내가 굳이 복면 작가의 길을 걷는 이유라면 이렇습니다. 오래 전 잠깐이나마 신문에 단편 소설을 연재한 적이 있었습니다. 글의 내용은 순수한 중년 연인의 로맨스였는데 글 속 주인공들의 스킨 십 장면에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어떤 극성스러운 독자가 매우 거칠고도 끈질기게 요구한 장면은 다름아닌 키스 신이었는데 "너무 싱겁다, 좀 더 리얼하게 표현해라, 누구 속 타 죽는 꼴을 볼 것이냐"며 들들 볶았습니다. 더 나아가 다른 독자는 "판에 박은 삼류 소설 그만 써라, 네 연애 얘기냐" 등 예의 없는 전화질로 곤혹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대리 만족을 위해 본질을 벗어날 수는 없기에 주인공들의 지고 지순함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마무리하여 부랴부랴 연재를 끝내고 말았습니다. 그때 나는 솔직히 상처받았습니다. 글에 대한 의욕과 열정만 가득했을 뿐 독자들의 쓴 소리를 감당할 수 있는 배포도 실력도 없는 겁쟁이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참으로 자신 있어 하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털어놓자면 나는 심각한 음치, 몸 치, 길치요 기계치 입니다. 십년 내내 똑 같은 길도 어느 날 도로공사가 시작되는가 싶으면 정신을 차릴 수 없는 혼돈으로 길을 잃어 버리는 일이 허다합니다. 또 큰 맘먹고 합창단에 입단하여 우아한 목소리를 자랑하려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내 파트인 소프라노를 놓치고 옆 사람의 알토를 따라 가기에 비지땀을 흘리기 일쑤입니다. 벼르고 벼르다가 용기 내어 에어로빅 댄스를 배우리라 부지런을 떨었지만 간단한 박자 하나 맞추지 못해 팀원들로부터 낙오되어 엉거주춤 뒤로 물러나야 하는 처량함은 달랠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무사고로 자동차 운전을 하고 다닌다는 것은 여간 신통 한 일이 아닙니다. 복잡한 스마트 폰 사용법을 배울 때도 괴롭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흥미도 없고 관심도 없고 재주도 없는 일을 새로 배운다는 것은 고통이지만 나름 부단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혼자서 노래방을 수십 번이나 들락거려 보고 집에서 DVD를 틀어놓고 숨이 넘어가기 직전까지 강남스타일 춤을 연습 또 연습 했지만 결국 발뒤꿈치가 까지고 무릎에 관절만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냥 생겨 먹은 대로 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글에 대한 열정적인 에너지는 전혀 다릅니다. 비록 이름을 바꾸고 가면을 뒤집어 쓸지언정 글 만큼은 써야 합니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 머리에 꽃을 단 소녀를 아시는지요? 그 순진한 미친 소녀가 모든 것은 다 참아줘도 누군가가 머리의 꽃을 건드리는 순간엔 흡혈귀처럼 변하는 것을 요. 그렇습니다. 소신 있게 쓴 글에 대해 터무니없이 상처를 내면 나 역시 동막골의 미친 여자로 변신합니다. 요즘 틈틈이 드라마를 씁니다. 새로운 장르인 시나리오를 쓰는 일에 흠뻑 취해 혼자 히죽거립니다. 때가 되어 이 글을 발표할 때에도 나는 얼굴 없는 복면작가 일 것입니다. 한 문장 한 소절로 사람을 얻을 수만 있다면 언제까지든 기쁨으로 쓰는 이 펜을 놓지 않을 것입니다. 모두가 힘겨운 세상살이에 살맛이 나도록 행복을 전하는 요정이고 싶습니다.
2015-09-02 그리고 산이 울렸다
(And the Mountains Echoed) by Khaled Hosseini 오랜만에 재미있는 책을 읽었다. 언제부터인지 책을 읽는다는 것이 공부가 되고 숙제가 되어 버리면서 그 재미를 잃게 되어 서운했다. 과연 모든 예술은 어렵고 힘들고 또 이해하려고 노력해야만 하는 것일까? 세상의 모든 글을 쓰는 작가라면 인생의 한 번쯤은 베스트셀러의 책을 내놓고 싶을 것이다. 근데 이 작가는 3번째의 이 장편도 벌써 그 자리에 매김 하였다니, 과연 어떤 매력으로 어떤 이야기로 어떤 플릇으로 작품들을 이어가고 있는지 궁금하였다. 작가는 어린 시절 아프카니스탄을 떠나 미국에서 교육받고 자랐지만, 그의 뿌리는 조국에 있으며, 나라의 불행이 오히려 더 무한한 애정과 상상력으로 깊고 넓은 이야기를 이렇게 펼치고 있다. 아프카니스탄의 빈곤과 전쟁 속에서 살고 있는 가난하고 힘없고 희망도 가지지 못하는 주인공들이지만, 그는 어느 한 곳에서의 인물들로서 이야기를 만들어가지 않는다. 지나친 설명과 부연도 없이 툭툭 독자들을 여기저기로 던져 놓는다. 그러면서 그곳에서 각각의 주인공들이 하나씩 자신의 이야기들을 털어놓으면서, 그것들은 갈고리가 되어 또 다른 곳에서의 또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에 턱 하니 걸쳐 놓는다. 읽다 보면 그 걸쳐놓은 갈고리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 잊어버려 몇번은 앞장으로 들락거렸지만, 어쩌면 그것이 의도되었든 되지 않았든 더 많은 손때와 궁금증으로 휘어잡는다. 소설 속의 어떤 인물 하나도 제대로 행복하고 성공하고 화려한 사람이 없다. 어쩌면 가족의 붕괴와 권력과 돈에 의해 헤어지고 짓 밝히고 무시당하고 잊고서 살지만, 어느 누구도 그 삶에 대해 저항하거나 분노하지 않으면서, 각각 한 사람씩 애틋한 사랑의 모습으로 사라지며 또다시 이어간다. 산다는 것이 결코 쉽지도 어렵지도 않은 한 판의 연극무대일지라도,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헤어짐도 잊혀짐도 치유해 나가면서, 그것이 바로 인생 본연의 몫을 제대로 하다 가는 것이라고 작가는 이야기해준다. 끝까지, 마지막 만남 속에다 망각을 던져 놓으면서도 또 하나의 갈고리는 아주 작지만 먼 곳에서 다시 살아가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과연 무엇이 예술이며 거창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작은 그릇의 나는 이렇게 믿는다. 자신의 재능으로 혼신을 다해 많은 날들을 애쓰며 노력한 작품들이, 해 저무는 창가에 서 있는 외로운 누군가에게, 웃음과 기쁨과 희망을 주며 행복해지는 삶의 작은 순간순간들을 부여해주는 것이라고.
2015-08-05 에스터 최의 행복한 쉼터 : 문화 대사
미국 땅에 살다 보니 나에게 이런 날도 있네요. 이번 여름에 제가 아주 멋진 곳에서 매우 특별한 여름휴가를 즐기고 왔음을 말씀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그것도 완전 공짜로요. 자초지정을 털어 놓자면 친구 잘 만난 덕에 말 그대로 아방궁에서 왕비 같은 대접을 받으며 신선놀음을 즐길 수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일년 전 한 여름의 뜨거운 폭염이 늦은 저녁까지 식지 않았던 그날, 나는 시원한 바람을 기대하며 어스름한 공원을 산책하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공원 모퉁이에서 어떤 할머니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주저앉아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한 눈에도 긴급한 상황으로 판단되어 떨림과 두려움으로 어떻게 도와드릴지를 물었습니다. 스테파니라고 이름을 밝힌 노 할머니는 먼저 물을 필요로 했고 병원이 아닌 본인의 집으로 데려다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 어르신은 애지 중지 아끼던 당신의 강아지와 산책을 나왔다가 강아지의 목 끈이 풀어지는 바람에 녀석이 어디론가 달아났다고 말했습니다. 구 십 도가 넘는 찜통 더위에 강아지를 찾기 위해 오랜 시간 그 고생을 하셨으니 변을 당하지 않은 것만도 천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걱정이 된 나는 밤사이 안부를 확인하고자 할머니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근간에 남편을 먼저 하늘나라에 보냈노라고 사연을 털어 놓은 할머니는 큰 집에 강아지 마저 없으니 너무 외롭다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그냥 돌아설 수가 없어서 나는 강아지 사진을 달라고 하여 수십 장을 크게 확대한 뒤 녀석이 갈만 한 곳을 추적하여 벽에 부치고 다녔습니다. 한 장 한 장 광고지마다 제발 꼭 찾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았지요. 4일 후 거짓말 같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강아지를 찾고 있다는 벽보를 마이클 이라는 사람이 보았고 길을 잃어 헤매고 있던 강아지를 데려와 성심껏 돌보고 있던 그는 곧 바로 달려와 할머니 품에 강아지를 안겨 준 것입니다. 아! 그 날의 감동이 떠오를 때면 나는 지금도 가슴이 쿵쾅거립니다. 이후에 그녀와 나는 엄마와 딸 같은 친구 사이가 되어 종종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분이 나를 초대했습니다. 년 중 행사로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과 손자 손녀들을 불러 모아 휴가를 지내는데 나도 함께 동행해 줄 것을 간청한 것입니다. 몇 날을 고민하던 끝에 심히 부담스럽지만 이 참에 짜릿한 모험도 괜찮겠다 싶어 상기된 얼굴로 하와이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나의 무능함에 자존심이 내려 앉았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스물 다섯 명 가족들의 눈이 일제히 나를 주목하고 있다는 것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한 것이지요. 삶의 현장에서 갈고 닦은 내 영어 실력은 고작 한 시간짜리 대화 수준인데 일주일이나 되는 길고 긴 시간을 어떻게 버틸지 상상만해도 머리가 지근지근 아팠습니다. 결국 함께한 저녁 식사 시간에 코피가 터지면서 이제 와서 어쩌지도 못하는 후회스런 슬픔이 들통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누굽니까? 매운 고추장의 저력으로 다져진 당당한 한국인이 아니겠는지 요. 곧 소심한 마음을 고쳐먹고 생각을 바꾸어 말이 통하든 안 통하든 언어에 적극성을 띠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휴양지에서 살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김치와 된장찌개도 아닌 느끼한 치즈와 버터 바른 빵들을 주식으로 먹으며 눈 뜨면 모든 일상을 영어로 시작해야 하는 고된 훈련을 감수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일이 마음먹기 달렸다더니 아, 글쎄 어느 순간 꽉 막혀있던 귀가 뚫리고 벙어리였던 입이 빵 터지고 있음이 깨달아졌습니다. 신기할 만큼 자신이 붙은 나는 목숨처럼 여기던 품위는 내던지고 평소 아줌마다운 기질의 수다로 가족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입담이 되었습니다. 요즘 연일 핫뉴스로 다루고 있는 한국에서의 메르스에 대한 염려와 남한의 눈부신 발전과 상반된 북한의 암울한 현실, 그리고 거북선을 만들어 나라를 지키신 이순신 장군과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님, 경복궁의 유례와 한국의 민속촌과 경주에 있는 유적지까지 우리나라의 역사를 궁금해 하는 모든 질문들에 대해 온 몸으로 아주 리얼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또한 혹시 필요할지도 몰라서 챙겨간 카드게임인 화투와 윷놀이 등으로 한국의 문화를 정열적으로 가르쳤습니다. 게다가 식탁에 대한 관습도 확실하게 바꾸어 놓았는데 예절 바른 한국인은 어르신이 먼저 수저를 들고 나야 나머지 가족들이 밥을 먹는다는 것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집 안에서 들어오면 반드시 신발을 벗고 생활한다는 청결함을 강조했더니 모두들 머리를 끄덕이며 맨발로 다니는 이변이 생겼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그들의 얼굴색만 보고 깨끗한 줄 알았는데 함께 해보니 그들보다 우리가 백번 청결한 바른 생활방식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특히 아침에 일어나는 즉시 맨 입에 독한 커피를 마셔대는 당신네들과는 달리 옛적 우리의 선남 선녀들은 물을 담은 바가지에 버들잎까지 띄워 후후 불어 마시도록 했던 아름다운 일화도 들려주었습니다. 곧 물이 아닌 마음을 마시는 깊음까지 전달하자 우리의 민족의 숨은 매력에 반한 가족들은 계속 어메이징과 원더풀을 외쳤습니다. 어쨌든 매일 아침 커피 대신 깨끗한 생수를 마시면 한국여인들처럼 나이가 들어도 탱글탱글한 피부를 유지한다고 자랑했습니다. 사실은 은근히 나를 두고 한 말이지만 요. 어느 덧 눈 깜짝할 사이 7박 8일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공항에서 각기 집으로 향하던 날 아침, 혀 꼬부라진 소리로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한국말을 연습하며 호탕하게 웃던 그들이 참으로 고맙고 기특합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에멀랜드 빛 물결 속으로 스노클링 하면서 놀았던 바다왕궁의 거북이와 문어가 못내 그리워지면서 입가에 훈훈한 미소가 번집니다. 그리고 한국문화대사의 수행을 완수한 어깨위로 무궁화 꽃이 활짝 핀 것 같아 또 다시 흐뭇해집니다.
2015-08-02 글을 쓰면서,,,,,
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느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물지게로 물을 나르는 지게꾼에게 오래되어 금가고 깨진 항아리가 물었다. "주인님은 왜 깨지고 쓸모없는 저를 버리지 않으시는지요?" 했더니 주인님은 "우리가 오래 함께 물을 길으면서 걸어온 길들을 보아라. 그 먼지 나든 길가에, 깨진 너의 항아리 사이로 흘러내린 물 때문에, 꽃도 피고 나무도 자라고 아름답지 않으냐.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없으며, 어느 누구도 그것을 가치없는 거라고 하며 함부로 버리지 못하는 거란다." 위로해 주었다한다. 깨진 항아리의 이야기 속 - 조금은 모자라고 깨지고 볼품없지만, 오래 사랑받고 자신의 몫을 다하면서, 먼지 풀풀 날리는 길가에 작은 꽃도 피우면서살아가는 사랑과 귀중함을 배워가고 싶다. 작은 무엇 하나에도 눈빛을 주며 새삼스럽게 바라보고 싶다. 하찮은 것은 하나도 없다는 생생함을 가지고서 머리와 가슴과 손짓으로 만져보면서 느끼는 마음을, 글로서 그림으로서 표현하고 싶다. 무엇이 더 소중하고 무엇이 더 위대하며 더 아름답다는 선입감을 버려둔 채로, 진솔한 벗어버린 그 자체로서 바라보고 싶다. 가슴 속에 느껴서 오래 묵혀 두었든 느낌들이 시간이 지나 어쩌면 조금은 익어져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뚜껑을 열면, 가끔은 아주 샛노랗게 잘 익은 채 로 본 모습을 잃지 않은 체 있지만, 어떤 때는 냄새나고 곰팡이 슬어 아주 못쓰게 된 것들도 있다. 어찌 매일 잘 되기만, 빛깔 좋기만 바라면서 살 수 있을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작업의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치유이며 다독거림이다. 아무런 것도 아닌 것에 흥분하며 붓을 들고 연필을 들 때도 있지만, 오래되어 조금은 깨어지고 보잘것 없을지라도 길가에 흘리든 물 조각처럼 나도 오래 조금씩 흘려서 꽃 피우고 싶다. 나의 삶과 어쩌면 조금은 다른 이의 인생에 알듯 모를 듯 꽃을 피우게 만들어주고 나무도 자라게 해주는, 그런 깨진 항아리일지라도 그렇게 글을 쓰고 또 그림 그리고 싶다.
2015-07-03 에스터 최의 행복한 쉼터 : 달려라, 나타
학창시절 나는 한동안 추리소설의 묘미에 흠뻑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김성종 작가가 쓴 '여명의 눈동자'라는 역사 대하소설을 탐독한 후로는 내 민족에 대한 강한 애정이 싹트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글 속에는 당대 세 명의 젊은 조선인 학도병 최대치와 미 정보부 요원인 위생병 장하림, 그리고 위안부인 윤여옥을 통해 일제치하의 식민지 시절의 고통과 해방, 6.25 전쟁으로 이어지는 통한의 파란 만장한 역사의 뒤안길에서 몸부림쳐야 했던 우리 민족의 처절한 통곡이 절절이 배어 있었습니다. 열 권의 책을 읽어가는 동안 일본의 태평양 전쟁 당시 회오리 바람 속으로 빨려 들어간 나는 온갖 만행을 저지른 일본에 대한 분노와 절규, 비탄으로 몸을 떨면서 마지막 책장을 덮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일본군의 위안부로 착출 되어 꽃다운 나이에 짐승보다도 더 무참하게 짓밟혔던 윤여옥과 같은 삶의 여정을 걸어온 우리네 한 많은 여인들, 힘을 잃었던 지난 한국역사 사건의 증인인 그분들을 생각하면 통분과 죄송함으로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그런 연유로 인해 나는 무조건 일본제품을 배제하고 한국제품을 선호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미국 땅에 도착하자 마자 필수적으로 구입해야 하는 자동차도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우리나라 제품인 현대자동차를 가족으로 맞아 들였습니다. 그러나 13년이란 세월 동안 우리를 위해 뛰고 달려준 '나타'(소나타의 애칭)는 234,350마일이 되자 기력이 쇠진하여 중병이 들고 말았습니다. 나는 어떻게든 나타를 살려보고자 백방으로 뛰었지만 끝내 별 다른 방도를 찾지 못했습니다. 낙담 하던 중에 불현듯 어떤 용기가 생겼습니다. 한국에 있는 현대자동차 본사에 편지를 띄우는 일이었습니다. 그 동안의 나타 공적과 사진 등을 첨부하여 택배로 부친 지 정확히 다섯째 되는 날, 본사로 부터 긴급 연락을 받았다며 미주 책임자께서 제게 연락을 해왔습니다. 아! 우리 나타에게 관심을 가져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맙고 감사하던지요. 문을 두드리면 열린다는 기적을 나는 그때 실감나게 경험했습니다. 통화 결과 슬프지만 불치병에 걸린 나타와는 이제 그만 이별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자상한 설명을 듣고 녀석과의 헤어짐을 결단해야 했지만, 태평양을 건너온 한 이민자의 애국심을 알아준 현대자동차가 유럽은 물론 세계에서 으뜸가는 자동차업계의 롤모델이 되게 해달라는 소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나의 무모한 것 같은 도전적인 행동을 본 친구들과 이웃들은 매우 흥미로운 관심으로 "혹시 자동차 선물 받았어요?" 라며 묻곤 했습니다. 1년이 지났습니다. 심장을 감찰한 하늘은 결단코 내가 공짜로 새 자동차나 선물 받아보려고 취한 행동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해 주었습니다. 타주에 계신 어떤 지인께서 본인의 애지중지 아끼시던 자동차를 보내 주셨는데 전에 타던 우리 소나타의 차종과 모델, 색깔이 똑 같았습니다. 이 일이 어찌 우연이라 할 수 있을까요? 나는 다시 우리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나타를 위해 쓸고 닦으며 온갖 정성을 다해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세심한 종합진찰로 건강관리를 철저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150,000마일 밖에 안된 녀석의 몸은 이곳 저곳이 아프기 시작합니다. 아! 나는 지금 가슴이 타들어갑니다. 이 미국 땅에서 TV에 토요타 캠리와 현대 자동차의 광고가 나란히 화면에 뜰 때마다 나는 내심 우리나라 제품을 얼마나 응원했는지 모릅니다. 프리웨이에서 일본자동차가 곁으로 다가오면 우리 나타는 더욱 멋진 우아한 자태로 한국자동차의 마크를 휘날리며 의기양양해 하던 일이 자랑스럽기만 했는데 말입니다. 나는 여전히 그들의 모든 것을 이기고만 싶습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그들은 식민지배와 침략, 군 위안부 강제동원의 만행을 사죄조차 않을뿐더러 독도를 자기들 땅이라며 억지를 부리고 있습니다. 누구의 소행인지는 모르지만 얼마 전에는 대대적으로 독도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sfkorean.com이 인터넷 상에서 사라지며 해킹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선조가 만들 낸 민족 고유의 음식인 김치까지 자기네 것인 양 떠벌이고 있는 것도 괘씸하며 구십 도로 깍듯이 머리 숙여 인사하는 그들의 경배 속엔 두 가지 마음이 뻔히 들여다 보여서 신뢰가 전혀 가질 않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잘못이라도 용서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선하고 착한 우리 민족은 그들의 진정한 사과를 기다리면서도 선한 실력 싸움에는 반드시 이겨야 하겠습니다. 그러기에.. 나타야! 애국가를 부르며 다시금 힘내어 달려보자.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
2015-07-01 만남도 헤어짐도
살면서의 이 모든 만남도 헤어짐도 다 고스란히 내 안에 남아 있음을, 자랄 것은 다 자라버린 이제서야 깨달았다. 아주 오래전 같은 학교를 다니며 서로 비슷한 길에 서서, 붓을 들고 함께 그림을 그리며 멋진 작품을 꿈꾸던 친구들을 만나 짧은 여행을 떠났다. 지나가 버려 영원히 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그 시절로 되돌아가, 아주 오래전부터 그냥 내게 주어진 것 같았던 습관 같은 남편과 아들도 아예 없었던 거처럼, 20살의 나 그대로 서 있었다. 온전한 나 하나 만으로서 친구들과의 시간들은 끝없는 이야기와 웃음과 순수함 그것만으로도 긴 세월 훨훨 날려 버리며, 문듯 눈가의 주름도 흰머리도 세상의 아픔들도 구름처럼 사라져 버렸다. 혼자 오래 살고 있는, 몸이 좋지 않은, 세상의 화려함을 잃어버린 누군가는 있었지만, 너무도아름다운 하나하나의 친구들 - 모두가 떠나는 마지막 날, 보내야 하는 언제 다시 만나 이렇게 같이 있을까 싶은 서운함에 눈물부터 흘러내리며 껴안고 또 껴안았다. 오래전 이미 나에게서 떠나 버렸다고 아예 마음의 빗장 속에 닫아 두었던 젊음의 청춘이 순식간에 왔다 다시 사라진다고 느꼈었기에, 더 서운하고 더 붙잡고 싶었던 것이리라. 나 자신도 완벽히 잊어버렸든 옛날의 나를 기억해주며, 나의 모자람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 많은 실수들도 내게 가르쳐 주었다. 오롯이 잊고 있었던 옛날의내가 다시 나타나, 오히려 지금의 나에게 잘 살고 있다고 머리 쓰다듬어도 주었다. 예전의 내가 있었었기에 지금 이 순간, 땅에 단단히 다리를 딛고 서있는 것이고, 그때의 그 아픔과 기쁨과 실수로 다져졌기에 오늘이 있는 것이다. 그래, 떠나 버렸다고 믿었던 청춘의 다시 만남도 헤어짐도 그저 내 마음 안에서 느끼고 있었던 것이지, 그것은 없어지지도 사라지지도 않았던 것이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나든 부끄럼 없는 나를 위해 더 머리 숙이며 살라고 가르쳐 주었다.
2015-06-02 탁월한 선택
요즈음 세계의 뉴스를 접할 때마다 '재앙'이라는 단어가 속출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봐도 사건과 상황을 설명하는 표현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달포 전인 4월에 이어 5월에는 네팔에서의 격렬한 지진발생으로 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는 소식에 우리 모두는 서늘한 가슴을 쓸어 내려야 했습니다. 또한 지난해 8월에는 우리의 고장인 샌프란시스코 베이지역에 6.0 규모의 지진으로 샌프란시스코 일대 100만 명이 강한 진동을 느낌과 동시에 세계 최대 와인산지인 나파 벨리 지역이 크게 파손되었던 아픔을 기억합니다. 게다가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이곳 캘리포니아는 극심한 가뭄으로 인한 물 전쟁이 치열해지기 시작했다는 뉴스가 연일 보도되고 있습니다. 급변하는 지구의 지각변동과 밤 사이에 일어나는 예기치 않는 사고등으로 앞으로 어찌 살아야 할지 불안하다 못해 무서워지기까지 합니다. 그러면서도 시급한 이 때에 나는 무엇인가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를테면 불의한 사고를 대비하여 미리 마음을 가다듬고 단속하는 일이지요. 구체적으로 그 날을 예비한 구급 약품과 양식을 저축해 놓는 일입니다. 몸의 단백질 섭취와 열량을 위해 비프저키를 비롯한 미숫가루, 초콜릿과 쿠키, 그리고 신변의 보호를 위해 호루라기와 마스크, 손전등과 겨울 옷가지 등입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식수는 아예 여러 박스 비축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강아지 사료도 잊지 않고 꼼꼼하게 챙겨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여차하면 준비된 배낭을 짊어지고 달음질할 태세로 현관문 옆에 항상 대기해 놓았습니다. 좀 창피하긴 하지만 행여 샤워 중일 때나 변기에 앉아 있을때 이런 재난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어떻게든 살아남을 궁리를 다 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전투태세를 완벽하게 끝내고 있는 나에게 지인 한 분이 스마트 폰으로 카톡 한 개를 보내왔습니다. 이어령 교수의 '나에게 이야기 하기' 글 중의 일부입니다. '너무 잘하려 하지 말라 하네. 이미 살고 있음이 이긴 것이므로.(중략) 너무 조급해 하지 말라 하네. 천천히 가도 얼마든지 먼저 도착할 수 있으므로. 죽도록 온 존재로 사랑하라 하네. 우리가 세상에 온 이유는 사랑하기 위함이므로. 향나무는 자기를 찍은 도끼에도 향을 묻힌다네요' 이 짧은글 몇 소절이 아침햇살처럼 내 마음에 쏟아져 스며들었습니다. '빚'이라는 글 자에 점 하나를 찍으면 '빛'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나는 단단히 꾸렸던 짐을 미련 없이 풀어 놓습니다. 용케 살아 남아 미안해 하는 것보다 아직 턱 없이 못다 베푼 사랑, 죽을 힘 다해 퍼주고는 잘 죽을까 합니다. 수필가 에스터 최
2015-06-01 선생님께
[샌프란시스코 한국 문학인 협회]에서 매달 읽는 책 덕분에 지적인 풍요를 누리는 삶입니다. 더구나 지난달에 읽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는 뇌리를 파고들어 선생님의 뜻대로 모두 필사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절절한 아름다움은 전신에 전류가 되어 흐르면서, 저도 선생님께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문학을 당신의 운명이라고 말씀하시는 우리들의 선생님, 선생님은 또 말씀하셨습니다. "문학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인생을 사랑하는 것이다. 문학은 곧 삶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웃을, 사회를, 국가를, 나아가서는 인류를 사랑하게 되는 길이기도 하다"고요. 선생님, 저는 사회나 국가, 인류까지는 몰라도 나 자신과 이웃만이라도 진지하게 사랑할 수 있는 작가이기를 바라며 이 글을 올립니다. 선생님,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프란츠 쿠사버 카푸스]에게 쓴 편지에는 "나는 글을 꼭 써야 한다" 는 답이 나오면 "삶을 이 필연성에 의거하여 만들어 가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은 산달이 되도록 가슴속에 잉태하였다가 분만하라고. 모든 인상과 느낌의 모든 싹이 완전히 자체속에서, 어둠 속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 속에서, 무의식 속에서, 우리 자신의 이성으로 도달할 수 없는 것 속에서 완성에 이르도록 내버려두라고, 그러고 나서 깊은 겸손과 인내심을 갖고 새로운 명료함이 탄생하는 시간을 기다리라고, 이것만이 예술가답게 사는 것이라는. 그리고 말합니다. 여기서는 시간을 헤아리는 일이 통용되지 않는다는. 여기서는 1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심지어 10년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무릇 예술가라고 하는 존재는 세지도 헤아리지도 않아야 한다고요. 나무처럼 성장해 하는 존재. 수액을 재촉하지도 않고 봄 폭풍의 한가운데에 의연하게 서서 혹시 여름이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지 않아도 여름은 오니까. 여름은 마치 자신들 앞에 영원의 시간이 놓여 있는 듯 아무 걱정도 없이 그리고 여유 있게 기다리는 참을성 있는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것이라고. 그것을 날마다 배우고 있다고. 인내가 모든 것이라는 것을. 선생님, 릴케는 또 말합니다. 누구도 함께할 수 없는 당신의 성장을 기뻐하라고요. 또 말합니다. 꼭 필요한 것은 위대한 내면의 고독뿐이라고. 선생님, 10통의 길지 않은 편지들이었지만 남은 생을 두고 두고 읽고 또 읽고 싶은 내용이었습니다. 이 책을 권해주신 선생님, 어버이날이있고 스승의 날이 있는 이 계절에 감격과 환희로 감사의 글을 끝냅니다. 감사합니다.
2015-05-05 어머니 날 즈음에
산그늘의 봄 서인숙 산은 제 모습을 모른다. 모르는 아픔이 있다. 화창한 봄날 산은 제 모습을 호수를 향해 던졌다 호수는 기다린 듯 물결을 치솟다 잠잠하게 산을 감싸 안았다 나무 우거진 숲 속은 원시이듯 맨살이다 아무도 말하지 않은 수목의 언어들이 피워 오른 물의 영토 산은 황홀한 웃음을 터뜨리다 노을 쏟아 낸다. 해는 산을 넘었다. 산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80대의 엄마가 쓰신, 격려의 시 한편 . 가슴속에 쏴 하는 아픔이 내게로 던져진다. 산다는 것은, 나이의 딱 그 숫자만큼 아팠다가 나았다가 하며 만들어진 나이테처럼, 굳은살로 무거워진 무게만큼 아팠다는 것이리라. 내가 지독히도 좋아했었고 또 그보다 더 미워하고 싫어하는 바로 위 핏줄의 연결인 엄마의, 내려다보는 사랑인 것이다. 난 아직도 버둥거리며 거추장스러워하며 그 사랑에 힘들어하지만, 내가 넘을 수 없는 절대적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산은 제 모습을 모른다고 하신다. 모르는 아픔이 있다고 하신 거처럼 나도 모른다. 그래서 더 많이 아프고 더 모자라고 그래서 영원한 자식인 것이다. 언제쯤 나도 당신처럼 될 수 있고, 당신의 사랑을 제대로 느끼면서 - 모르는 자식이 아닌 조금은 알아주는 자식으로- 노을을 쏟아내며, 당신의 자랑스러움이 될 수 있을지...
2015-05-01 폼생폼사
그 얘기를 전해 듣는 순간부터 멀쩡하던 배가 갑자기 뒤틀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그저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위장이 울렁거려 입맛까지 싹 달아났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살맛도 없어졌습니다. 콩 심은 곳에 콩 나고 팥 싶은데 팥이 나련만 좁쌀 알을 심었을 그녀가 어찌하여 품지도 않은 황금알을 독차지 했는지 불거진 내 심통은 영 가라앉지를 않습니다. 그녀와 이웃사촌으로 지내온 지 어언 15년, 먼 형제보다 가까운 이웃이 백 번 낫다는 말대로 서로간에 속내 다 털어 보이며 살아온 관계인 것 같은데 그녀에게 찾아온 뜻밖의 횡재가 왜 나를 이토록 괴롭게 하는지 그것이 더 환장할 노릇입니다. 이 참에 말이야 바른 말인데요. 결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그녀의 친구가 되어주기로 한 날부터 나는 실상 많은 것을 베풀었습니다. 알뜰하다 못해 짠순이인 그녀에게 밥값은 물론 영화, 여행, 쇼핑 등 만날 때마다 지불되는 돈은 거의 제 차지였습니다. 말도 잘 안 통하는 이민의 땅에서 뛰고 달리며 달러를 벌어 생존하기는 그녀나 나나 도토리 키 재기인데 말입니다. 그래도 내 처지가 상대보다는 조금은 숨 돌릴 수 있다는 배려로 나는 매번 쿨 하게 행동했지요. 그럴 때마다 미안해진 친구가 종종 내게 던진말은 " 고마워, 언젠가 내가 잘 되면 그 땐 너에게 비단방석 깔아 줄께. 호호호.." 그런데 정말 그녀에게 대박이 터졌습니다. CNA(간호보조사)로 일하는 그녀에겐 유달리 가깝게 지내던 환자가 있었는데 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소유하고 있던 당신의 집과 재산을 몽땅 이 친구에게 넘겨 준 것입니다. 버젓이 당신 자식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 한 방울 섞이지도 않은 동양 아줌마한테 송두리째 그 많은 재산을 유산으로 물려 준, 코 크고 눈 파란 이 나라 사람의 본심을 이해하기란 너무나 버겁습니다. 하여튼 그녀는 쓰나미보다 더 무섭다는 렌트비 내는 날짜에 떨지 않아도 되고, 주행 중 자동차가 허락 없이 정차하는 일에 당혹해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리고 빵과 우유를 사기 위해 달려가던 원 달러($1) 가게의 출입을 졸업했으며, 'Good will' 스토아에서 중고품 옷과 신발을 고르기 위한 치열한 경쟁에서도 완전히 물러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루 아침에 백조로 변신한 친구에게 눈을 맞추며 당연히 화문석 호화로운 비단 방석에 앉혀 주겠거니 고대하던 나는 몇 날 안되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유는 갑자기 거부가 된 그녀가 이곳 저곳에서 들이 내미는 손이 못내 부담스러웠던지 잠수함을 타고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그렇지, 나마저 버려두고 가다니... 참으로 치사한 친구입니다. 그 날 이후 절반 이상을 살아온 내 삶을 점검해 보았습니다. 남들처럼 이렇다 할 배경이 없는 나는 은근슬쩍 튀는 것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매주 한 번, 일확 천금을 꿈꾸며 로토를 사들인 날 수를 합하면 강산이 두 번 변했을 테고, 박수 받기 위해 주머니를 털어 선행을 주도한 일은 열 손가락이 넘습니다. 어떻게든 무대에 올라서서 주인공이 되어 찬사를 받고 싶기만 한 나! 하늘은 여전히 폼.생.폼.사 로 살아가고 있는 나를 향해 꾸짖어 말합니다. "이 철없는 것아, 세상 이치는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여"
2015-04-04 에스터 최의 행복한 쉼터 : 닭 대가리
이른 아침 누군가가 문을 세차게 두드렸습니다. 잠이 덜 깬 실눈으로 현관문을 열자 뜻밖에 옆집 남자가 우뚝 서 있었습니다. 순간 너무 당황하여 문을 쾅 하고 닫아 버렸습니다. 그리곤 아차 싶어 다시 문을 열자 그 남자는 몹시 화난 표정으로 나를 향해 말했습니다." your car door is open" '이 새벽에 웬 봉창 두드리는 소리람' 나는 눈을 껌벅이며 잠시 멍청해졌습니다. 그러나 몇 초 후 사태를 감지한 나는 한 걸음에 자동차를 파킹해 놓은 곳으로 달려가야 했습니다. '이런 젠장 …'자동차 안은 직격탄을 맞은 것보다 더 아수라장이었습니다. 기분 정말 꽝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벌써 세 번째입니다. 한번은 공원 주차장에서, 또 한번은 다른동네 주택가에서, 그리고 이번엔 우리집 파킹장에 버젓이 주차해 놓은 안전지대에서 일이 발생했습니다. '자동차에 손을 댄 녀석이 어떤 놈인지 나타나만 봐라. 그냥 단 한 번에 이단 옆차기로 날려 버리리라' 열을 품어내다가 나는 금새 맥이 쭉 빠져버렸습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하신 경찰나리의 말씀이 유리창이 깨지지 않은 정황으로 비추어 볼 때 내가 자동차 문을 잠그지 않았다고 힘주어 말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내가 닭 대가리란 말인가?' 위로는 고사하고 건망증으로 치부하는 경찰의 태도에 기분이 더 나빠졌습니다. 그러나 실은 마음이 꺼림직하긴 했습니다. 평소 자동차 문조차 잘 닫지 않고 내려 배터리가 나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거든요. 그건 그렇고 나의 재산목록 1호인 자동차에 도둑이 들었다는 것보다 더 심각한 일은 옆집 남자가 우리집을 찾아왔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몇 년 동안 이웃으로 살면서도 얼굴 마주하여 그 흔한 'How are you?' 인사 한번 나눈 적이 없었기에 그의 돌출 행동이 고맙기 보다는 겁이 났습니다. 혼자 사는 그 남자는 밝은 대낮엔 집에 잠적해 있다가 캄캄한 밤에만 밖으로 나와 주변을 돌아다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가끔 한밤중에는 괴성을 지르곤 해서 종종 경찰이 다녀가기도 하고 누군가가 그를 방문해 올 때도 남자의 큰 울음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하여튼 알수 없는 정체불명의 남자가 바로 내 옆 집에 살고 있다는 것에 나는 경계심을 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정면으로 그의 얼굴을 대한 오늘아침, 웬일인지 그의 푸른 눈이 하루 종일 아른거렸습니다. 그렇게 맑고 깊은 눈은 생전 처음 보았습니다. 야심한 밤에 울부짖곤하던 그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른 아름다운 눈 속엔 어떤 비밀이 숨겨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날 저녁 평소대로 황혼이 지기 전 산책길에 나섰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건너편에 살고 있는 수잔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함께 걸으며 오늘의 빅뉴스인 자동차 사건을 얘기 하면서 옆집 남자의 공헌담까지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수잔이 눈물 젖은 목소리로 말합니다. "참으로 안됐어. 그 젊은 양반, 이라크 전쟁에서 너무 큰 쇼크를 받아 정신이 반은 나갔다지? 참으로 보기 드문 성실하고 착한 마이클이었는데 말야. 속히 그 전쟁의 아픔을 잊어야 할 텐데..." 수잔의 말을 듣고 있는 내 마음이 송곳에 찔린 듯 고통스러웠습니다. '아메리칸 스나이퍼' 영화의 한 장면 속으로 마이클의 모습이 클로즈업 되어 다가왔습니다. 적군에게는 악마였으나 아군에게는 영웅이었던 남자, 공식적으로 160명을 비공식적으로는 255명을 저격 사살한 미해군 전설의 저격수 '크리스카일'처럼 삶과 죽음을 넘나 들었던 또 다른 실화의 주인공이 바로 내 이웃, 옆 집 남자였습니다. 나는 고민합니다. 전쟁에서 밀려나 수호신의 그림자가 되어 이웃을 지켜주고 있는 그의 고독을 말입니다. 그리고 나는 기도합니다. 몇 번이고 자동차를 털리게 한 '닭 대가리'인 나처럼 그도 전쟁 속 파편의 기억들일랑은 깡그리 잊어버리는 또 다른 '닭 대가리'였으면 좋겠습니다.
2015-04-01 2014년 노벨문학상 작가 패트릭 모디아노의 '지평'을 읽고서
지평의 뜻부터 찾아야만 할 것 같았다.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에 생기는 선으로 보이는 풍경이라는 뜻이다. 무엇과 무엇이 만났었고 또 누구와 누구가 만났다고 하여 생기는 것 - 관계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2차대전이 끝난 후, 프랑스의 혼란과 가치관의 상실속에서 시작된, 관계의 지독한 상실속에서 외롭다 못해 처절한 청춘의 남녀가 지하철 앞에서 만난다. 무엇인지 제대로 된 공포의 실체도 모르는 체 도망 다니는 20살 남짓의 여자와, 인간관계의 첫 시작인 부모로부터의 학대에 숨어다니고 있는 남자의 시작도 끝도 없는 사랑 이야기다. 그런 두 사람의 만남과 사랑과 미래라는 거대한 계획은 갑자기 타인에 의한 작은 일에 뽑히면서 이별은 시작되었고, 그관계들은 어느덧 긴 기억의 창고에 갇혀 버린다. 40년 후의 남자는 오랜 시간 상실되었던 기억 속의 파편들을 작은 수첩에 적어 가면서 다시 그 여행 - 관계는 시작되고, 작은 단어 하나와 이름의 첫 글자 하나에서 살아온 시간들이 불빛처럼 떠오르면서, 잊고 있었다는 끝나지 않은 그 사랑은 바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요즈음의 나 자신도 문득 떠오르는 단어들이, 생각지도 않았든 이의 모습으로 그리고 그곳에서 들었던 웃음소리까지 기억나게 하는 순간들이 생겼다. 이름은 잊었지만 작은 노래 속의 한 구절이 오래전에 있었든 사랑의 흉터 자리를 다시 가려워 긁게 하고, 미움 속에 헤어졌든 어디에선가 분명히 마주쳤을지도 모르는 친구의 모습을 기억하게 한다. 어디에서부터 기억들이 지워져 갔는지 모르겠지만, 아주 많은 사람과의 만남과 이별은 마치 밤 기차 속 여행처럼, 누구는 다음 종착지에 커다란 가방을 들고서 눈빛 한번 없이 씩씩하게 내렸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두 눈 가득 눈물을 머금은 체마지못해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바라보며 떠났을 것이다. 사랑하면 내 곁에 남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떠나갈 것이다. 그렇지만 내게 남겨 놓았던 그 만남 - 관계는 아직도 이곳에 사는 내 기억과 심장과 살갗 밑에서 오늘의 나를 만들어 가고 있을 것이며 그 또한 바로 내가 만든 나 자신인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타고 있는 이밤 기차는 누군가를 태우고 또 누군가는 내려놓으면서도, 쉼 없이 오늘도 만남을 만들어 가면서 지금도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2015-03-01 영화 <국제시장>을 관람하며
얼마만큼이 나의 몫일까 인생에서,,,, 오랜만에 영화를 보며 한참을 울었다. 오로지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책임을 위해 희생하며 온갖 힘든 일을 하다, 나이들어 뒤돌아 보든 어느 날 꿈속에서 만난 아버지께 이야기한다. 당신이 등뒤에 매어 주신 - 나의 몫에 온 힘을 다했다고 응석 부리며, 참으로 힘들었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이었다. 나자신의 감정까지 덧붙여서 제대로 이입하며 그냥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게도 분명히 버티며 지켜가며 최선을 다해야 하는 나만의 몫인 인생이 있을 것이다. 혹 아직도 그 몫이 무엇인지 제대로 찾지도 못한 체 헤매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 조바심내지만, 아마 지금의 오늘 이 자리가 진정 나의 몫이라고 여기고 싶다. 귀찮고 힘들어도, 그만두고서 숨고 싶어도, 끝까지 묵묵히 천천히 진심으로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내게 주어진 몫을 다하였다며 자랑하게 될 거라 믿고 싶다. 그 어떤 다른 선택보다 당신이 주신 그 길이 옳았다고 자신하면서. 그래, 얼마만큼이 나의 몫인지 모르겠지만, 떠나야 하는 그 어느날. 그동안의 많은 일 과장하며, 정말 많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끝냈다며 마음껏 응석 부릴 수 있으면 더 좋겠다.
2015-02-08 깨어 있음에
모두가 깨어 있으라고들 한다. 더 많이 느끼고 더 성장하고 더욱더 제대로 사람처럼 잘살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깨어 있음으로써 느끼게 되는 하루하루의 기쁨이 과연 우리는 얼마나 감사히 받아 드리고 있을까. 눈 뜨는 일과의 시작에서부터 눈을 감는 하루의 끝자락 사이, 볼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움직일 수 있고,,,, 이 신체의 기능부터 모든 것이 당연한 듯 그냥 스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얼마나 무심하게, 무감각하게 이 많은 소중한 것을 생생하게 느끼며 감사하고 있을까. 진정으로 깨어 있어 느끼는 삶은 감사의 연속임을. 비록 모순과 역설과 이율배반이 인간 인식일지라도, 또한 고통이 제2의 축복이라는 신앙적 관점이 아니라도, 이 모든 것은 삶의 부분임을 깨달으며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삶은 살아 있는 자체가 은총이기 때문이다. 살아 있기에 느끼는 삶이 너무도 귀함을 시간이 흐를수록 더 느끼게 된다. 이렇게 깨어 있어 느끼는 삶은 나에게 더욱 더 가족과 친지의 귀중함을, 삶의 아름다움을 뇌리와 가슴에 젖어들게 한다.